곰소젓갈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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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소젓갈 이야기

곰소젓갈의 유래

곰소젓갈의 유래

THE STORY OF GOMSO JEOTGAL

세대를 이어 함께 즐기는
곰소젓갈의 이야기

신선한 해산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에 절이고 숙성해 온 삶의 지혜 곰소만의 깊은 맛을 간직한 젓갈 문화가 이어져 왔습니다.

곰소항
01

곰소라는 이름에 담긴 이야기

곰소는 예로부터 용연, 용소 등으로 불렸다고 전해지며, 곰처럼 생긴 섬과 그 앞바다의 깊은 소(沼)에서 ‘곰소’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곰소의 옛 이름과 관련해서는 ‘웅연(熊淵)’이라는 명칭도 확인됩니다.
그 깊은 소를 ‘여울개’라고도 불렀습니다.

이곳에는 칠산바다를 지키는 바다의 수호신 개양할미에 얽힌 전설도 내려옵니다. 거대한 몸집의 개양할미가 곰소 앞바다를 건너다가 깊은 여울개에 빠졌다는 이야기로, 지역에 따라 무릎까지 빠졌다거나 치마가 젖자 돌을 날라 메웠다고 전해집니다. 개양할미는 부안 수성당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서해안의 대표적인 바다 수호신입니다.

소금
02

서해 바다를 지키던 중요한 길목

곰소 일대는 오래전부터 해상 교통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1454년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당시 부안현에 염소와 염창이 있었으며, 봄과 가을에 소금을 생산해 바쳤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현재의 진서면 구진마을 일대에는 검모포진이 자리했으며, 검모포는 고려시대 해상 기항지로 이용되고 조선시대에는 수군기지로 활용됐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검모포는 서해안 수군 체계의 중요한 포구 가운데 하나로 확인됩니다.

《고려사》에는 고려 우왕 5년인 1379년 왜선 50여 척이 웅연에 정박해 부안 일대를 침입했다는 기록도 전합니다. 다만 당시의 ‘웅연’을 현재 곰소항 한 지점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오늘날의 곰소·검모포 일대와 관련된 지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안전합니다.

이처럼 곰소 일대는 오랜 세월 사람과 물자가 오가고, 서해 바다를 지키던 중요한 해상 거점이었습니다.

SEA · SALT · TIME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오늘날의 곰소항
현재 우리가 보는 곰소항은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조성된 항구입니다.

곰소 염전 천일염 모습

당시 인근의 줄포항은 토사가 계속 쌓이면서 수심이 얕아져 항구 기능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일제는 새로운 항만을 만들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고 곰소 일대를 개발했습니다.

1938년 무렵부터 연동과 범섬, 곰섬, 까치섬을 연결하는 제방 공사가 진행됐고, 약 5년에 걸친 공사를 통해 섬이었던 지역이 육지와 연결되면서 1940년대 초 오늘날 곰소항의 기반이 형성됐습니다. 2026년 전북대학교 연구에서도 1938년부터 제방을 축조해 현재의 곰소항이 형성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항구를 조성한 배경에는 이 일대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각종 물자를 일본으로 반출하려는 일제의 수탈 목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아름다운 포구로 알려진 곰소항에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 또한 함께 남아 있습니다.
해방 이후 곰소항은 본격적인 어항으로 성장했습니다. 1958년에는 어업조합과 부두노조가 줄포에서 곰소로 옮겨오면서 항구의 기능이 더욱 커졌고, 칠산어장을 오가는 어선들과 다양한 고기잡이배들이 곰소로 모여들었습니다.

숙성된 젓갈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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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사람, 소금과 시간이 빚어낸 맛

곰소젓갈에는 한 지역의 긴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깊은 바다에 전해지는 개양할미의 이야기,
서해를 지키던 검모포의 역사,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곰소항,
항구로 모여든 싱싱한 수산물,
그리고 햇빛과 바람이 빚어낸 곰소의 소금.

그 모든 시간이 만나 오늘날 곰소젓갈의 깊은 맛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안의 바다와 사람들이 오랜 세월 함께 만들어 온 맛, 그것이 곰소젓갈입니다.

부안의 바다와 사람,
그리고 시간이 함께 빚어낸 맛

서해의 풍요로운 바다에서 얻은 신선한 수산물과 곰소의 햇빛과 바람으로 만들어진 천일염, 그리고 정성과 기다림이 만나 오늘의 곰소젓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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